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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 저자다카하시 겐이치로
  • 출판사웅진지식하우스
  • 출판년2014-02-26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6-06-10)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PC는 추후 지원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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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마니아들에게 전설처럼 떠돌다 사라졌던

    포스트모더니즘 엽기충격 소설이 다시 돌아왔다!




    1995년 〈20세기 일문학의 발견〉이라는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되었던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한국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꼭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알음알음 알려져 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절판이 되어 소설 마니아들로 하여금 책을 찾아 헌책방 순례를 하게 만들었던 이 책이 출간 10년 만에 개정 출간되어 열혈독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제목처럼 ‘야구에 관한, 야구를 위한, 야구에 의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야구’를 떠올리며 읽는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곧 당황하게 될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만 살펴보아도 이 소설의 특징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카프카야말로 야구에 관한 열정이 대단한 포수 후보 선수였을 것이라 추정하며 야구에 관한 글만을 모으고 있는 노인, 야구를 배우기 위해 900편의 야구 시 쓰기와 100편의 포르노 비디오 보기라는 하드 트레이닝을 감내하는 불멸의 초등학교 1학년, 공이 너무 잘 보여 도무지 칠 수가 없다는 4번 타자와 라이프니츠에 매료된 슬럼프에 빠진 주전 투수, 일본 야구를 창조하기 위해 길을 떠나면서 일기를 교환을 위해 여동생을 낳아달라는 네케레케세맛타 신까지, 우스꽝스럽게 뒤틀려 있는 야구광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야구가 사라진 가상 세계를 살고 있는 야구광들의 철학적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그 신랄함과 참신성을 인정받아 제1회 마시마 유키오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문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




    고등학교 재학 때부터 평론을 발표하고 직접 각본을 써서 연극 공연을 하기도 했던 저자는 ‘잘 표현해 낼 말이 없어 소설을 쓰게 되었다’며 자신이 직접 쓴 연보에서 밝혔듯이 ‘소설을 쓰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문학 소년이었다. 하지만 요코하마 국립대학에 진학하였을 때 당시의 많은 청년들이 그러했듯이 그도 학생운동에 가담하였고, 급기야는 1970년에 구치소에 구금당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당하게 된 그때의 충격으로 인해 실어증에 걸린 그는, 1979년에 글쓰기를 재개할 때까지 그 상태가 계속 지속되었다고 한다.

    ‘언어’를 무기로 삼은 문학 청년이 말을 잃고 난 좌절 속에서 필사적으로 재활의 의지를 불태우며 소설가, 평론가로서 ‘언어’에 관여하고 표현하는 길을 다시 택했다는 것은 문학에 대한 대단한 애착 없이는 가능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문학 따위는 무섭지 않다》《문학이 이렇게 잘 이해가 되어도 좋은 것일까》《문학왕》 《문학이 아닐지도 모르는 증후군》 《일본 문학 성쇄사》 등 ‘문학읽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줄줄이 발표하였고, 《사요나라, 갱들이여》(1980, 군조 신인장편소설상 수상),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 등의 소설도 발표하였다.

    다카하시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였으며, 그의 소설은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근대 소설의 기존 형식을 해체한 새로운 형태의 소설 방식을 취하고 있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우리가 오랜 세월 동안 익숙하게 읽어온 ‘문학’의 개념을 완전히 해체하며 독자들에게 낯선 즐거움을 선사한다.





    근대 소설의 어법을 파괴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작



    이 소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소설의 형식을 거부한다. 기승전결이 나타나는 근대 소설의 어법에 익숙한 독자들은 ‘본 줄거리’ 없이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처음엔 당황하면서 읽게 된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던 글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이 되는지 깨닫게 되고 그제야 이 소설의 재미를 알게 되는 것이다.

    다카하시는 이런 형식의 파괴를 통해 우리가 ‘소설’이라고 여기는 개념을 비웃으며 새로운 소설 형태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일명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시도라 일컬어지는 이 방식은 소설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기존 소설의 매너리즘을 과감하게 타파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기존 소설에 대한 비평은 비단 형식의 파괴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르나르의 《박물지》와 한 소설가가 쓴 〈아침마다 배달되는 2병의 요구르트 중 1병이 사과 맛인 것은 요구르트 배달원 아줌마의 나이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소설응 비교해 봄으로써, 문학을 순수한 창조 행위로 믿어 왔던 우리의 의식을 여지없이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나는 그로부터 한참 동안, 무척이나 좋아하는 낮잠 시간을 없애면서 이 문제를 계속해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내게는 《박물지》적 변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내가 뿔 사이를 긁어 주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조금 뒷걸음질을 친다. 그녀가 기분이 좋아 자꾸 다가오기 때문이다. 커다란 덩치로, 얌전하게, 언제까지나 잠자코 그렇게 있기 때문에, 드디어 나는 그녀의 똥을 밝아 버린다.”

    이것은 《박물지》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의 그녀란 ‘암소’를 말합니다. 그리고 내 〈요구르트 아줌마〉(너무 길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쪽은 이렇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하길 좋아한다. 나는 언제까지나 싫증을 내는 일 없이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문득 보면 그녀는 어느 샌가 잠이 들어 버린 것이었다.”

    과연, 이것이 《박물지》적 변환이구나. 그렇게 당신은 생각하겠지요?

    - 〈가짜 르나르의 야구 박물지〉 중에서



    우리가 이제까지 ‘창조’ 행위로 믿어 왔던 언어들이, 사실은 결코 순수한 ‘창조’일 수 없다는 사실이 유머러스한 필치로 제시된다. 여기에 따르면, ‘소설’이란, 나아가 모든 ‘쓰는’ 행위란 이미 주어진 정보를 재구성하는 ‘변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소설’이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에는 또 어떤 칼날을 들이대는가. 야구장의 장내 아나운서들이 선수 명단을 놓고 나누는 대화를 통해 저자는 소설이 주는 ‘감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요되는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명단을 보면서 “감동의 극치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극치야”, “인류사에 한 획을 긋는 혁명적인 감동의 총집합이라고나 할까?” 등등 그녀들의 대화를 통해서, ‘감동’을 유발시키려는 ‘소설’의 시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야구’에 대해 쓴 듯이 보이면서도 사실은 ‘소설’에 대해 쓴 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언어 표현의 해체, 그리고 재구축



    ‘야구’에 대해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야구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 소설에서는 기존에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단어들의 의미를 완전히 해체하고 있다.



    수고양이라면 ‘365일의 반찬 백과’, 암고양이라면 ‘다자이 오사무 주간’. 그것이 이곳의 규칙인 것이다. …… 집주인의 말에 의하면 내 방에 기거하고 있는 것은 8대째 ‘365일의 반찬 백과’이다. 어제 체중을 달아 보았더니 7킬로그램이었다. 체중 7킬로그램의 갈색 ‘365일의 반찬 백과’. 한쪽 눈은 빨갛고 또 한쪽은 파랑. 뭐 콘텍트 렌즈를 꼈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1개월 전에는 ‘다자이 오사무 주간’도 있었다. 6대째 ‘다자이 오사무 주간’. 체중 3킬로그램의 얼룩무늬 암고양이는 창문으로 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365일 반찬 백과’보다 멋진 수고양이가 눈에 띈 것이었다. 이것을 글로 써 보면 “‘다자이 오사무 주간’은 ‘365일의 반찬 백과’를 남기고 뛰쳐나갔다”가 된다.

    - 〈가짜 르나르의 야구 박물지〉 중에서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저자는 ‘365일의 반찬 백과’ ‘다자이 오사무 주간’ 이란 이름을 고양이에게 붙임으로써 우리가 과도하게 언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을 비웃고 있다. 소설 속에서 “전기 제품에 이름을 붙이면 고양이가 피곤해”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의미’에 대한 반응일 것이다. 즉 ‘의미’란 우리가 믿고 있듯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부여의 ‘행위’에 의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일본을 창조한 신들의 이름을 의미 없는 단어인 네멘호텝, 네네네노네, 넴보라고 한다든가, 히데와로잔나(일본 혼성 듀엣), 후지코 후지오(일본 만화가) 등 시대풍속에 너무 밀접한 나머지 보편성을 갖지 않은 단어들을 사용한다. 언어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단지 기호로만 느껴지는 이런 단어의 사용은 언어의 의미나 이미지를 파괴하고 새로운 언어의 표현 형식을 구사한다.

    ‘의미’의 강요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언어를 구사하면서, 인위적이 아닌 ‘언어’ 자체의 힘에 의해 구성된 소설, 즉 저자는 언어의 해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해체를 통해 언어의 재구성을 이루어 냈다.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단순히 언어적 유희나 말장난으로 가득한 가벼운 소설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작으로 꼽히게 된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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