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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신라 왕실의 비밀

신라 왕실의 비밀
  • 저자김종성
  • 출판사역사의아침
  • 출판년2016-09-13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6-11-11)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PC는 추후 지원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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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탈해와 김춘추는 어떻게 박씨 왕이 되었는가?

    신라의 ‘수상한’ 왕위 계승을 둘러싼 논쟁과 진실




    신라는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건국한 후 박, 석, 김 세 성씨가 돌아가면서 왕위를 차지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국사 교과서에 실릴 만큼 상식으로 자리 잡은 이 설명이 과연 맞는 것일까? 이 책은 신라 왕실이 박씨 왕실이었다는 다소 충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아울러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에서 비롯한 ‘왕비족’ 이야기, 김춘추의 등극을 둘러싼 성골, 진골 논란까지 《삼국사기》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신라 왕위 계승의 비밀을 차례로 풀어본다. 《삼국유사》, 필사본 《화랑세기》, 《한서》, 《구당서》, 《일본서기》, 《고사기》 등 한국과 일본, 중국의 풍부한 사료와 역사적 사례를 취합해 상식과 통념에 가려져 있던 고대 신라의 실체를 흥미롭게 펼쳐보인다.





    신라 천 년 권력의 비밀, 신라를 통솔한 이방인 왕들



    신라는 991년의 역사를 가진, 한반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왕조를 유지했던 나라다. 조선과 고려의 수명은 500년 남짓에 불과했으며, 신라와 경쟁 관계였던 백제와 고구려 또한 신라보다 300년 일찍 멸망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신라는 고구려만큼의 군사력을 갖추지도, 백제만큼 지리적인 이점을 누리지도 못했다. 여러모로 국력이 미약했던 신라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신라 건국 초기, 가야 김수로와의 경쟁에서 패한 석탈해가 함선 500척을 거느리고 신라에 등장했다. 경주에서 출발한 소국이었던 신라로서는 그를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에 신라 왕실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석탈해를 왕실 일원으로 맞이한 것이다. 석탈해는 제2대 남해왕의 장녀인 아효와 혼인했고, 나아가 제4대 왕에 올랐다. 김씨 왕의 시조가 된 김알지의 신라 진입 과정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된다. 이처럼 신라 왕실은 혼인과 입양 등을 통해 위협 세력을 포섭함으로써 외부와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한편, 박성 왕실의 정체성은 유지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것이 바로 신라가 천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신라 왕실의 숨은 주역, 왕비족의 존재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으나 신라 왕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존재가 있다. 바로 왕비족이다. 신라에서는 왕의 혈통뿐 아니라 왕비의 혈통도 세습되었다. 《삼국사기》와 필사본 《화랑세기》 등의 사료에 따르면, 초기 신라의 왕비 자리는 제1대 왕비 알영의 후손이나 가까운 혈족으로 채워졌다. 아울러 신라 왕실은 외래 세력을 포섭해 왕실을 보전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왕비의 혈통에 변화를 줌으로써 대외 환경의 변화에 대응했다. 2세기경 신라가 북방으로 영토를 팽창하는 데 조력한 조문국의 공주를 왕실로 받아들여 진골정통이라는 왕비족을 세웠고, 5세기경 고구려가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던 때에는 고구려 여성 보미를 받아들임으로써 대원신통이라는 왕비족을 세웠던 것이다. 왕비족은 신라의 국운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신라에서 여성의 정치적인 지위가 높았음을 시사한다.





    박, 석, 김의 나라는 없다? 《삼국사기》가 감춘 진실



    김부식은 《삼국사기》〈신라 본기〉를 서술하면서 신라 왕실에 박씨, 석씨, 김씨 3대 왕족이 공존했던 것처럼 묘사했고, 왕비족의 역할을 축소했다. 그의 서술은 우리 머릿속에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신라를 ‘통치’한 것은 어디까지나 박성 단일 왕족이며, 석씨와 김씨는 신라 왕실이 포섭한 외부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김부식은 그러한 사실을 감추었을까? 널리 알려진 것처럼 김부식은 철저한 유교주의자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신라 왕실의 왕위 계승 체계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에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신라 왕실이 외부 혈통을 박성의 일원으로 수용한 사실은 드러내지 않은 채, 마치 신라가 3성제 국가였던 것처럼 서술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려 시대 유교 사관에 입각해 서술된 역사서에 의존해 신라를 왜곡해왔다. 이제 해묵은 통념과 상식을 벗겨내고, 신라의 진면목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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