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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대한민국 넷페미사

대한민국 넷페미사
  • 저자권김현영, 손희정, 박은하, 이민경
  • 출판사나무연필
  • 출판년2017-01-12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2-01)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PC는 추후 지원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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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넷페미의 입으로 정리한 넷페미의 역사



    2016년은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 이슈가 불거진 한 해였다. 강남역 살인 사건에 이어 메갈리아로부터 비롯된 각종 소란, 낙태 금지를 반대하는 검은 시위와 ○○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건들을 둘러싼 분노와 절망, 고발과 공감의 물결이 온라인에 다양한 파장을 만들어냈고 이 파장은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졌다.

    강남역 10번 출구로 나와 포스트잇을 붙인 이들, 메갈리아의 소송 지원을 위해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를 구입한 이들, 낙태 금지를 반대하는 검은 시위에 나선 이들,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SNS에 밝힌 여성들을 위로하고 함께 분노했던 이들……. 그렇게 자신의 문제의식을 표출한 사람들의 기저에는 인터넷이 있었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페미니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통로이자 이에 반하는 목소리와 싸워 나가는 전투의 장이며,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면서 현실을 이해해가는 공감과 학습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의 중심에 있던 2030 페미니스트들은 그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생각들을 그렇게 하나씩 터트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좌충우돌할 때도 있었지만, 그 날카롭고 선연한 에너지 덕분에 많은 이들이 다시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런 이들이 없었던 걸까? 시대가 달라진 만큼 상황도 달라졌기에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하게 비교할 순 없겠지만, 온라인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온 페미니스트들이 이전에도 있지 않았나? 그렇다면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보는 것이 현재의 활동에 참조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 넷페미사』의 기획은 이런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넷페미의 역사를 개괄해봄으로써 서로 다른 세대 간의 경험을 나누고 현재의 활동에 도움될 만한 힌트를 제공하고 싶었다. 물론 현재의 역동적인 활동에 대한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도 함께 곁들이고 싶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의 의의를 다룬 행사에서 만난 네 명의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 라운드 페이블’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강의를 기획했다. 어찌 보면 급조된, 하지만 마음속에 문제의식을 품고 있던 네 명의 여성이 만나 세상에 던진 돌멩이 하나였다.

    2016년 10월 8일, 장장 7시간 반에 걸쳐 기나긴 강의와 토론을 진행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몹시도 뜨거웠다. 권김현영, 손희정의 1, 2강 강의는 그야말로 넷페미의 입으로 말하는 넷페미의 역사였다. 당사자로서 그간의 역사를 말해줄 수 있는 자원이 페미니스트 내부에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3강의 토론에서는 기자로서 여성 이슈를 취재해온 《주간경향》의 박은하 기자와 현재의 주목할 만한 페미니스트 필자인 이민경의 시각을 함께 나눠보았다. 물론 강의 후 단행본 작업을 진행하면서 강의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에 대한 보완을 거쳤다. 서점을 통해 책 판매를 하기 전, 독립적인 온라인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을 통해 펀딩을 진행했다. 20여 일의 기간 동안 674명이 참여하여 총 10,548,000원이 모금되었다. 이 역시 꽤나 뜨거운 반응이었다.



    영 페미니스트의 시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의 강의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를 다루고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PC통신을 통해 사이버스페이스의 문을 열었다가 인터넷으로 넘어가기까지이며, 주체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전의 페미니스트와는 다소 이질적이었던 ‘영 페미니스트’가 등장하며 역동적인 활동을 벌인 때다.

    당시 3대 PC통신사에는 모두 여성 모임이 있었다. 하이텔의 ‘페미니스트의 천국’, 천리안의 ‘여성학 동호회’, 나우누리의 ‘미즈’가 그것인데, 권김현영은 이 시절 ‘미즈’의 시솝으로 활동한 원조 넷페미이기도 하다. PC통신의 세계가 펼쳐지면서, 당시에 새로운 사회를 꿈꿨던 이들은 사이버스페이스를 기회의 땅으로 여겼다. 기존의 위계질서가 사이버스페이스에 적용되지 않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개인이 동등하고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PC통신의 시대는 곧 논쟁의 시대였다. 그전까지의 논쟁이 지식인과 이론가의 주도로 이뤄졌다면, 이 시기 이후의 논쟁에서는 일반인들이 사이버스페이스를 활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논쟁의 장에서 수많은 여성 논객들이 탄생했고, 다양한 젠더 논쟁이 이어졌다. 그런데 PC통신 초기의 기대와 달리 온라인은 다양한 문제들을 내재하고 있었다. 여성 이슈는 그 당시에도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으며, 그와 관련해 표현의 자유와 검열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신설되고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검열 제도가 정비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남성 중심적 시선으로 왜곡하고 강간 문화를 정당화하는 포르노와 유통업자들보다는 하위문화로 취급되면서 끊임없이 불량물로 취급받았던 만화나 동성애 사이트가 도리어 고초를 겪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의식 있는 네티즌들은 ‘노컷 운동’을 기본적인 넷윤리로 여겼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넥슨 티셔츠 사태에서 웹툰 규제를 강화하자는 ‘예스컷 운동’이 벌어지는 걸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여성 네티즌들은 검열에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공격에 시달렸다. 여성에 대한 온라인 성폭력에 대처하는 다양한 지침들을 만들어간 것이 검열에 대한 찬성으로 오해받게 된 것이다. 성별에 대한 이중 잣대에 대한 반대의 맥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오인되기 쉬운 사안이었다.

    사이버 젠더 전쟁의 서막을 연 사건도 이 시기에 등장한다. 1999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가 군복무 가산점제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이 그 시초다. 이후 여성 단체 사이트들은 전방위적인 공격을 받으며 일시 폐쇄되었고, 나우누리 ‘미즈’에 대한 폐쇄 청원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군 가산점제 위헌 소송을 제기한 이들 중 다섯 명의 여성은 ‘이화오적단’으로 불리면서 개인 신상정보가 털리기도 한다. 남성들이 공격적인 플레이밍을 즐기면서 여성들이 즐겨 찾는 온라인 공간을 망가뜨리는 것 역시 시작된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자신이 즐겨 찾던 온라인 공간을 떠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온라인에서 여성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욕망이 상업적 여성 사이트들로 흡수되기도 한다. “선영아 사랑해”라는 바이럴 마케팅 광고가 아마도 그 시대 상업적 여성 사이트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엿볼 수 있는 사례일 것이다.

    권김현영은 마지막으로 이런 여성운동의 등장을 거시적인 안목으로 조명한다. 1920~30년대, 1990년대 중반, 2015년 전후, 이 세 시기는 강력한 동시대성을 띄고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여성운동이 마법처럼 등장한다. 이들은 기존의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 했던 규범들을 더 이상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여성들이었다. 하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할 수 없어서 말하고 설치고 싸우게 된 존재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새로운 여성들은 모두 기존 질서의 효용을 다한 순간 등장한다는 것이 바로 권김현영의 생각이다. 기존 질서로부터 이탈하는 집단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기존 질서의 힘이 약해졌고 더 이상은 기존 질서로부터 어떠한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망조의 조짐을 새로운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영 페미니스트들의 등장 이후 또다시 등장한 2015년 전후의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을 보면서 상정해볼 수 있는 전망일 것이다.



    헬 페미니스트의 시대: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영 페미니스트들의 활발한 활동 이후 페미니즘을 비롯한 사회운동은 소강상태를 맞이한다. 그렇다면 영 페미니즘은 이후 단절된 것일까? 그보다는 일종의 기억이나 가능성, 잠재력 같은 것으로 여전히 남아 있으면서 2015년 새로운 페미니즘 붐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고 보는 게 손희정의 입장이다. 이를 ‘페미니즘 리부트(reboot)’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리부트란 영화 산업에 쓰는 용어로 기존 시리즈물의 브랜드 가치를 가져오되 그 연속성을 버리고 작품의 주요 골격이나 등장인물만 차용해서 새로운 시리즈를 다시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2015년에 다시 점화된 페미니즘도 기본 설정은 유지하면서 트위터 같은 새로운 온라인 환경에서 전혀 다른 형태로 드러났다는 뜻이다.

    이러한 페미니즘 붐이 일기 전의 상황을 살펴보자.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에 등장한 ‘배운 여자’들을 기억하는지? ‘삼국카페’로 불리는 소울드레서, 쌍코, 화장빨 카페 회원들은 촛불 집회에 앞장서고 십시일반 돈을 모금해 진보 언론에 광고를 게재한다. 10대 시절 2002년 월드컵을 거치고 미군 장갑차 사건 때는 ‘촛불 소녀’로 나섰던 이들이 2004년 노무현 탄핵을 거쳐 2008년 다시 ‘배운 여자’라는 이름으로 광장에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엄밀한 페미니스트로 규정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자본주의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이들이었다.

    손희정은 이러한 젠더 의제를 공유하고 공론화하는 장으로서 트위터에 주목한다. 한진중공업 투쟁, 최고은 작가의 죽음, 나꼼수 비키니 사건 등이 트위터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된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특히 한진중공업 투쟁에서 배우 김여진이 만삭의 몸으로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당시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난 순간은 SNS를 통해 소통하고 연대하며 조직된 새로운 시민이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흐름을 거쳐 페미니즘 리부트의 신호탄이 되었던 것은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어요”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서 IS에 합류하기 위해 터키로 떠난 김군 사건, 김태훈 씨가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칼럼을 쓴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이후 메갈리아가 그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한국 사회에는 엄청나게 폭발적인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한다. 메갈리아를 경유한 여성들은 현재 페미니즘 정당 창당을 모색하는 ‘페미당당’, 부산 지역 페미니스트들의 모임 ‘부산페미네트워크’, 페미니스트 그룹 ‘불꽃페미액션’, 디지털 성범죄 근절 운동을 하는 ‘디지털포르노아웃’ 등을 통해 새로운 포스트 메갈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페미니즘에는 ‘휴덕’(덕질을 쉬는 것)은 있되 ‘탈덕’(덕질을 그만두는 것)은 없다.” 페미니즘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때도 늘 존재해왔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페미니즘의 이름을 유지하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 소위 말하는 ‘먹고사니즘’에 부딪쳐 잠시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지울 순 있어도 한번 페미니즘을 접하고 ‘코르셋’을 벗으면 결국 우리의 삶이 페미니즘이라는 정치적인 언어를 필요로 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는 언제든지 페미니즘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넷페미의 현재와 미래, 그 가능성을 찾아서

    《주간경향》에서 여성 이슈를 취재해온 박은하 기자는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부수고 싶은 상뿐만 아니라 만들고 싶은 미래상을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한다. 마치 18~19세기 영국에서 페미니즘이 확산되면서 『오만과 편견』 같은 책들이 괜찮은 남자의 상을 바꿔온 것처럼 말이다. 내가 바라는 나의 미래상, 좀더 크게는 내가 만들고 싶은 사회상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품는다면, 중심을 잃지 않고 세상에 대한 증오에 갇히지 않으면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현재 대한민국에서 그런 고민을 가장 절실하게 하고 있는 집단 중 하나가 바로 2030 페미니스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편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집필하면서 젊은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민경은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겪어온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그 고민을 글로 써낸 작가이다. 2015년 페미니즘 붐의 한복판에 있었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스트가 된 이상 끊임없이 성찰하고 더 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저를 비롯해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상황이기 때문에 내부 비판이나 신중한 태도의 중요성을 말하기보다, 넘어졌다고 해서 ‘걷지 말걸 그랬다’는 후회를 하지 않기를 무엇보다도 바랍니다.” 현재와 함께 미래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실질적인 충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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