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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위험한 프레임

위험한 프레임
  • 저자정문태
  • 출판사푸른숲
  • 출판년2017-01-20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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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지금 기자도 뉴스를 못 믿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시민은 오늘처럼 방대한 뉴스를 자유롭게 가져본 적이 없다. 거꾸로 권력은 오늘처럼 교활하게 뉴스를 조작하고 막은 적이 없다. 그 틈에서 공룡언론자본은 이문을 쫓아 맘껏 뉴스를 감추고 휘둘러왔다. 그리고 이제 뉴스는 우리 앞에 흉기로 다가와 있다. 그 피해는 오롯이 뉴스 소비자들한테 돌아간다. 바로 당신들이고 나다. 조작 왜곡 은폐로 무장한 뉴스, 그 위험한 프레임을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까닭이다.



    이 책은 본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한겨레〉 신문에 쓴 ‘제3의 눈’이란 칼럼을 가려 뽑아 만들었다. (…) 외신과 국내 언론 보도를 맞대보며 수상쩍은 뉴스를 토해내고 가려내고 들춰내는 연장을 ‘제3의 눈’이라 불렀다. 이제 그 ‘제3의 눈’으로 사람을 보고 사건을 보고 역사를 보자는 바람을 담아 독자들께 이 책을 올린다.

    저자 서문 중에서





    《위험한 프레임》은 1장 대한민국, ‘국격’은 없다 2장 주범은 언론이다 3장 제3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4장 헤드라인에 없는 미국을 본다 5장 영웅제작소, 환상을 접어야 보인다 이렇게 총 5장으로 구성했다.





    1장. 대한민국, ‘국격’은 없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나라도 아니다”고 외치며 겨울을 보내고 있다. 국제사회, 외신판이 주권을 가진 한 나라, 그 나라의 정부 수준을 어떤 잣대로 평가하나, 그 잣대로 볼 때 이렇게 움직인 한국 정부, 대한민국은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로 어떻게 제구실을 못한 걸까, 우리는 국가와 정부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아래 사건들을 통해 본다.



    - 남수단 파견 일본군이 한국군한테 총알 1만 발을 제공한 사건(일본군한테 총알을 빌리다)

    - 군사주권을 돌려주겠다는데 안 받겠다고 바락바락 우겨온 역사(대한민국과 부탄만 없는 것) - 오타와협약 운명을 쥔 미국 정부가 지뢰정책 변화를 알려도 서둘러 접어버린 정부와 언론(지뢰가 무서워 전쟁을 못 한다고?)

    - 대통령은 답안지를 줄줄 읽고 기자들은 묵묵히 받아 적는 신년기자회견(대통령은 5년짜리 비정규직이다)

    - 32개국 대통령과 총리가 모이는 외교전쟁터를 팽개치고 교민행사에 간 대한민국 대통령(시진핑과 아베는 있는데 박근혜는?)

    - 자국민이 사형 당한다는데 침묵 후 ‘유감 표명’(대통령의 침묵, “한국인 사형시켜도 좋다”)

    - 선장은 먼저 도망치고, 정부는 희생자를 돌보지 않고, 대통령은 유가족을 몰아세우는 세월호 참사(2014년 대한민국은 침몰했다)





    일본군한테 총알을 빌리다

    2013년 12월 23일, “남수단 파견 일본군이 한국군한테 총알 1만 발을 제공했다”는 뉴스가 떴다. 국내 언론은 ‘일본 정부가 먼저 무기수출 전면금지’ 원칙을 어겼다고 오보까지 날리며 일본 정부가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뉴스를 올렸다. 외신은 “한국군이 왜 일본군한테 총알을 빌렸는지”에 주목했다. 이미 외신마다 남수단 분쟁 가능성을 강하게 예고했고 한국 정부가 한국군에게 물자를 전달할 시간은 충분했기 때문이다.(13~14p) 외신의 눈에 대한민국 정부는 정보취합 능력, 상황판단 능력, 군사운용 능력도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폭로한 꼴이다.

    전쟁터에서 남의 나라 군대에게 총알을 빌린 이 괴상한 사건에서 저자는 ‘군인에게 목숨인 총알’을 빌리게 한, 즉 군인들의 목숨을 못 지켜준 정부는 주권을 포기한 것임을 지적한다. 문제의 심각함은 이러한 정부의 주권포기가 일만 터지만 현지 책임자의 판단 부족만 탓하고 발뺌해온 것이 대한민국 군최고지휘부의 해묵은 버릇이라는 데 있다. “일본군한테 탄약을 빌린 건 현지 책임자(한빛부대장) 판단이었다.” “우리 군대 파병시 탄약 보유 기준을 재검토해보겠다.”(17p) 당시 국방부 장관 김관진이 한 말이다.



    대통령은 5년짜리 비정규직이다

    2014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이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한 나라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계획과 철학을 밝히는, 그것도 미리 짜놓은 80분짜리 기자회견에서 답안지를 읽어서이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신년기자회견장에서 고개를 박고 답안지를 줄줄 읽었다면? 미국 언론이나 국민들이 난리날 것은 불 보듯 뻔하고 그날로 오바마의 정치 인생은 끝장났을 것이다.(42~43p) 외신기자로 25년 넘도록 여러 국가 정상의 기자회견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저자는 이 일의 심각함을 ‘대통령이 뭔가?’와 ‘출입처제도’ 두 가지 관점에서 짚는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대통령이란 자를 너무 너그럽게 봐줬다. 대통령이 뭔가? 시민이 먹고살기 바쁘니까 엄청난 월급 줘가며 정부를 잘 꾸려달라고 고용한 5년짜리 비정규직 공무원이다. 그런 대통령이 시민 앞에서 답안지를 읽었다는 건 태업을 한 꼴이다.”(43p)

    “우리 언론판도 짚어볼 때가 됐다. 출입처제도다. 나는 이게 대통령과 시민사회를 가로막아온 주범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출입처 제도는 일본 제국주의 때 만들어져 독재정부가 키워온 아주 질 낮은 전근대적 폐습이다.”(48p)

    저자는 28년간 수많은 정부를 대통령실, 총리실을 드나들었지만 출입처 제도로 발이 묶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을 밝히며 독립적인 취재는 불가능하게 만드는 ‘청와대 출입 기자단’, ‘국회 출입 기자단’ 구조를 비판한다.(48p)

    폐해의 예로 2014년 5월 8일 청와대 출입 기자단이 세월호 참사 당시 서남수 교육부장관 ‘라면 엠바고’를 깨고 보도한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오마이뉴스〉 동료기자들에게 ‘63일간 청와대 출입 정지’를 내린 사건을 든다.

    “이 청와대 출입기자단 코미디를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그동안 시민사회가 알아야할 중대한 정보들을 청와대 출입 기자단이 얼마나 많이 뭉개버렸을지 헤아려볼 만하다.”(49p)



    대통령의 침묵, “한국인 사형시켜도 좋다”

    2015년 1월 18일, 인도네시아 정부가 영국, 필리핀, 브라질,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마약범을 총살했다. 각국 대통령과 총리는 외교 중단까지 발표하며 자국민 사형을 거세게 항의했다. 자국민이 마약을 샀건 사람을 죽였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외교관계도 국민보호보다 앞설 수 없고 국가, 정부, 국가정상의 최고 최우선 임무가 국민보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2014년 8월, 중국 정부가 한국인 마약범 3명을 사형했다. 대한민국 외교부 대변인은 “매우 안타깝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그게 끝이었다. 사형 선고 소식에 전화는커녕 항의 한 번 하지 않았다.(72p)

    ‘자국민 사형’에 대응해온 방식, 자국민을 보호하는 태도로 볼 때 대한민국 정부 수준은 나이지리아, 말라위와 같다.

    “이게 더도 덜도 없이 외신판에서 통하는 대한민국 대통령 수준이고 대한민국 정부 수준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안 지켜주는 국민은 그래서 안팎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74p)



    2014년 대한민국은 침몰했다

    우리 언론이 대기업 오너의 갑질 문제로 다뤘던 2014년 12월 5일 대한항공 램프리턴 사태. 그런데 외신들이 주목한 건 ‘사무장을 내동댕이치고 서울까지 날아온’ 대한항공 기장이었다. 리더로서 비상사태 대비라는 직업적 의무를 저버렸을 뿐 아니라 동료를 지켜주지 못한 도덕적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외신은 기장의 리더십 부재를 세월호 사태와 판박이로 해석했고, 2014년 외신판에서 만난 친구들은 어김없이 세월호를 물었다.

    “왜 선장이 먼저 도망쳤는가?” “왜 제때 구조를 못했는가?” “왜 대통령이 일곱 시간이나 사라졌는가?” “왜 정부가 희생자들을 제대로 안 돌보는가?”

    그 모든 질문에 저자가 내놓을 수 있었던 답이 “대통령 박근혜 탓이다”였던 이유는 이렇다. “대한민국 리더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자랑거리와 허물은 최고 리더인 대통령 몫일 수밖에 없다. 그게 이른바 민주주의 정치에서 말하는 대통령의 권리와 의무다.”(80p)

    저자는 세월호 참사와 대한항공 램프리턴 사태를 통해 우리가 리더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리더로서 각자는 어떻게 책임져야하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은 던진다.

    “시민사회가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든 원칙을 지켜내는 자가 리더다. 그 원칙을 끌고 가는 게 리더십이다.”(79p)

    그런데 ‘리더십을 박살낸’ 대한민국 최고 수장인 대통령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너무 정치적’이라고 몰아붙였다.

    여기에 저자는 원칙으로 답한다.

    “시민은 정치의 주체고 그 시민의 모든 행위는 정치다. 시민은 마땅히 정치를 할 권리와 의무까지 지녔다. 시답잖은 정당정치만 정치가 아니다. 정치인들 행위만 정치도 아니다. 하물며 리더십이 갈가리 찢기고 무너져버린 사회라면 시민은 마땅히 몸소 정치를 끌어갈 권리가 있다. 시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불량한 리더십만 날뛰는 사회에서 정치하지 말라는 소리는 가만히 앉아서 죽으라는 뜻이다. 그게 세월호였다.”(83p)





    2장. 주범은 ‘언론’이다



    ‘제4의 권력’으로도 부른다. 출처는 밝힐 수 없으며 취재가 아닌 방법으로 건진,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뉴스가 실제로 생사를 가르고 권력의 자리와 진위를 바꾸는 장면도 보아왔다. 2장 주범은 언론이다는 뉴스 소비자가 토해내야 할 뉴스와 언론을 가릴 때 쓸모 있을, 보다 직접적인 사건들을 다룬다.

    -뉴스 영향력은 왜 음모론의 위협을 받게 되었나(음모론 뉴스를 때리다)

    -공부를 안 한 것일까, 계획적인 거짓말이었을까(해킹팀 사건_ 국정원, 새누리당, 조선일보는 용감했다)

    -정부가 찍으면 언론이 사살하는 간첩조작(드레퓌스, 마타하리, 유우성… 누구근 간첩이 된다)

    -〈산케이신문〉 고발이 한국 극우 참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산케이신문〉 고발, 대통령 명예보다 소중한 것들)

    -시민이라면 누구든 연합뉴스에게 더 강력하게 요구해야 하는 것들(연합뉴스, KBS, MBC는 내가 주인이다)

    -김정은 뉴스를 취재도 확인도 없이 오보로 뒤덮은 2015년 여름 한국 언론(김정은쯤은 오보를 내도)

    -표절하고 받는 벌이 어떻게 불평등한지와 글 도둑놈 안 되는 법(표절, 언론도 한패다)



    음모론, 뉴스를 때리다

    음모론은 이제 소문, 말질거리, 헛소리를 넘어선다. 과학적 논리라는 내적 조건과 폭발적으로 늘어난 각종 통신 네트워크라는 외적 조건에 더해 미국 정부나 정보기관이 음모론이라고 길길이 뛴 ‘미국이 온 세상을 도청한다는 소문’이 스노든 폭로로 모조리 사실로 드러났다. 저자는 2001년 9.11사건을 음모론이 폭발한 결정적 계기로 꼽는다. ‘이 세상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전혀 새로운 인식법이 생겨났기 때문이다.(91p)

    “그로부터 사람들은 믿기 힘든 사건이나 현상과 부딪칠 때마다 속 시원히 못 파주는 뉴스 대신 음모론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고 “음모론은 전통적인 정보 생산자이자 전달자로 군림해왔던 뉴스와 맞붙을 만큼 모든 영역을 건드리고 있다.”

    저자는 개인이나 특정집단뿐 아니라 국가 정보기관까지 음모론과 역음모론을 퍼 나르는 지금 더욱 위태로워진 언론 본연의 책임을 짚는다.



    본디 음모론은 정보독점 권력에 맞서는 저항의 한 유형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 음모론을 키워낸 보모는 권력과 자본에 빌붙어 감시와 비판이라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언론이었다. _93p



    “결국 음모론은 언론이 무너진 땅에서 피어난 보복의 꽃이었다.” (94p)



    드레퓌스, 마타 하리, 유우성… 누구든 간첩이 된다

    2013년 3월, 국정원이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몰았다는 뉴스가 떴다.

    간첩조작. 저자는 “권력에 빌붙었건, 장삿속이었건, 빨갱이 강박증이었건, 부화뇌동이었건, 늘 언론이 간첩몰이 앞잡이로 나섰”던 가까운 역사를 불러온다. “극우 언론은 재판마저 반대하는 광기를 뿜”은 드레퓌스 사건과 “체포당할 때 나체였는지 따위에만 열 올”릴 뿐 “불법 재판에 의문을 달아주”는 언론은 없었던 마타 하리 사건. 그 둘은 사형 당했고 무죄를 인정받기까지 긴 세월이 흘렀다.

    그럼 대한민국 언론은? “독재정권 나팔수를 자임하며 그 많은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내몰았던 대한민국 언론은 아무 말이 없다. 어느 언론사 하나 용서를 빈 적도 없고 오보였다고 핑계라도 댄 기자 하나 없었다.”(109p)

    유우성 씨는 조작된 간첩혐의를 2015년 10월 29일에야 벗었다.

    연합뉴스, KBS, MBC는 내가 주인이다

    2014년 5월 10~11일 버마에서 열린 아세안정상회의를 현장발 기사로 올린 한국 언론은 신문이나 방송이나 단 하나도 없었다. “동남아시아 지역 언론은 말할 나위도 없고 로이터, AP, AFP, 〈뉴욕타임스〉, 〈아사히신문〉, BBC, CCTV 같은 수많은 국제 언론사가 취재경쟁을 하고 있는”는데 한국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수많은 국제언론이 아세안정상회의에 몰려간 이유는 외신판에서 뉴스가치를 가름하는 잣대로 볼 때 1면 헤드라인감이어서다.

    저자가 전하는 외신판 잣대는 “긴급성 지닌 사건과 사고를 빼고 나면 해당국과 정치적 경제적 연관성을 가장 먼저 꼽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해당국 최고위급 정치인들이 움직임을 늘 톱에 올리고 그 다음으로 자국민과 해당국 사이 연관성을 윗자리에 놓는”다. 근데 한국 언론은 “취재는커녕 재대로 된 기사 하나 안 올렸다.”

    저자는 특히 연합뉴스에 주목한다. 게다가 “25년 넘게 외신판에서 일하는 동안 서울발 보도가 아닌 국제뉴스에서 연합뉴스를 인용하는 외국 언론사를 본 적 없다. 현재 40여 개 해외지국에 특파원을 파견한 연합뉴스가 뉴스현장을 뛰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시민 세금을 투입하는 공공재이며 따라서 주인이자 뉴스 소비자인 시민사회에 뉴스를 제공할 의무를 지”닌 연합뉴스, KBS, MBC은 국민의 요구에 답해야 한다.



    시민이 공공재 뉴스매체한테 바라는 건 장사를 잘해서 회사가 엄청난 이문을 남겼느니 어쨌느니 따위가 아니다. 보도의 옳고 그름만 따지는 게 공정성이 아니다. 그 모든 것에 앞서 뉴스가치를 판단하고 뉴스현장을 확보하는 일이 공정성의 첫발이다. 연합뉴스, KBS, MBC가 상업 언론 흉내를 내면 안 되는 까닭이다. 125~126p





    3장. ‘제3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한 사건을 놓고 수많은 언론이 똑같은 뉴스를 내보낸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류 언론이 말하지 않는, 뉴스에서도 소외당해 더 억울해진 사실들을 들춰보자.



    -‘대통령’ ‘정책입안자들’ ‘입법가들’ ‘의료행정가들’ 책임을 시민 무관심 탓으로 돌리는 아이스버킷(아이스버킷, 가진 자들의 비정한 놀이)

    -방송통신위원회가 위헌이다(개그콘서트를 길들이다)

    -여성징병제, 특히 한국에서 여성징병제에 반대하는 이유들(‘적의 아군은 남자였다’)

    -타이와 재판에서 캄보디아가 승리한 방법과 함께 국경의 의미를 되짚어본다(영토분쟁-실효적 지배, 옛 지도 다 소용없다)

    -‘스코틀랜드 추락론’이 세계 뉴스를 뒤덮었지만 현실에서는 거꾸로였다(스코틀랜드 독립을 죽어라 막았던 건)

    -한국은 아직도 쿠데타의 추억을 먹고사는 자들에게 사로잡혀 있다(쿠데타는 결코 반성하지 않는다)



    아이스버킷, 가진 자들의 비정한 놀이

    2014년 9월, 루게릭병 환자를 돕겠다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온 세상이 난리였다.

    저자는 ‘돈을 내든지 얼음물을 뒤집어쓰든지!’에서 미국이 침공 때 써먹었던 ‘항복하든지 폭탄을 맞든지!’라는 독선적 결정과 일방적 강요만 있을 뿐인, 뭘 택해도 잃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공격적인 미국 정치문화, 군사대결주의 문화를 본다.(145~146p)

    게다가 무엇이 해결되었는가?

    “온통 난리를 친 뒤 루게릭병 단체들이 2억 원을 받았다는데 이걸 기뻐해야 옳은가? 루게릭병 환자 2,500명이 다가 아니다. 척수수막류를 비롯해 희귀성 난치병을 앓고 있는 1만 7,000여 명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희귀성 난치병조차 차별해야 옳은가?”(149~150p)

    “물론 그 대답은 대통령 박근혜 몫이다.” “세계 15위 경제대국이라고 떠들어대는 대한민국 정부가 희귀성 난치병 환자 2만여 명을 못 보살피겠다는 건 말도 안 된다.”(150p)

    언론은 무엇을 했는가? 언론은 “루게릭병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을 마냥 시민한테 돌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전선 없고 타격점 없는 캠페인이 늘 책임져야 할 자들한테 빠져나갈 구멍만 열어줬을 뿐이다.”(150~151p)

    “그래서 온 세상이 얼음물을 끼얹고 놀든 말든 당신만큼은 놀면 안 된다. ‘대통령’ ‘정책입안자들’ ‘입법가들’ ‘의료행정가들’.”



    적은 아군 남자였다

    “이슬람국가에 맞서는 쿠르드군, 3분의 1은 여전사”〈조선일보〉 2014. 9.15

    “잠수함에도 여군 탄다” “노르웨이” “현역 육군 중령” “여군 1만 명” “어제는 여군 성학대 문제를 애처롭게 다루 핏대를 올리더니 오늘은 은근히 여군을 내세워 군사주의를 부추기는 대한민국 언론사들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2014년 10월 20일 모든 언론이 노르웨이가 여성 징병제 실시계획을 마치 세계적 흐름인 양 떠들어대자 남성주의자들이 맞장구 치고 나왔다.”(164p)

    저자는 노르웨이와 대한민국을 견준다. "노르웨이가 현역 2만 4,000, 예비군 4만 5,000을 지녔다면 대한민국은 현역 64만과 예비군 430만을 거느렸다. 인구로 따지면 대한민국이 노르웨이의 10배지만 군사 규모로 따지면 70배가 넘는다. 이런 노르웨이를 대한민국에 맞대 여성 징병제를 외치는 건 지나치다고 지적한다.”(164p)

    또 하나 2014년 세계경제포럼이 밝힌 “‘세계성차별보고소’에 따르면 노르위에는 양성평등지수가 142개국 가운데 3위였고 대한민국은 117위였다. 이처럼 여성 차별이 심각한 사회에서 여성을 모두 군대에 보내자는 건 한마디로 여성박해고 집단 자해행위다.”

    저자는 이 글을 이렇게 맺는다. “ 21세기 세계시민사회의 화두는 군비 축소와 무장해제를 바탕에 깐 반전평화운동이다. 기회평등과 희생 분담을 이유로 여성 징병제를 외치는 소리는 모두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짓이다. 지금 우리에게 급한 건 여성 징병제가 아니라 1만 여군을 성폭행과 성학대와 성추행으로부터 먼저 보호하는 일이다, 이게 양성평등의 본질이다.”(165p)



    지금껏 미군을 통틀어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고발한 여군 가운데 장군이 된 이는 아무도 없다. 여군 79%가 성학대를 경험했다는 미군에서 장군 7.1%가 여성이다. 그 여성 장군 가운데 단 한 명도 성적 피해 경험이 없다는 걸 기적으로 볼 건 없다. 성폭행이나 성학대를 당한 여군 가운데 기껏 15% 미만이 보고했을 뿐이니까. 과연 대한민국 여군은 어떨까? _164p





    쿠데타는 결코 반성하지 않는다

    세상엔 해마다 쿠데타가 터져왔다. 2010년대 들어서도 줄기차게 쿠데타가 터졌다.

    저자는 여기서 한 가지 대목을 눈여겨본다. “20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성공한 쿠데타도 모두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이다.” “독일 헌법에서 뿌리내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생떼법 신화가 깨졌다. 쿠데타 세력의 비극적 종말은 법의 심판과 상관없이 세계시민사회가 더 이상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그런데 한국은 예외인가?

    “힘들게 민주화 이뤄놓고 왜 이제 와서 쿠데타로 권력 잡았던 박정희 딸을 대통령으로 뽑았는데?”

    2013년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 저자가 외신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군사 쿠데타로 민주제도를 뒤엎고 시민사회를 깨트린 박정희를 경제성장 하나로 때우자는 우리의 ‘박정희사’, ‘박정희론’”대로라면 “뼈 빠지게 일한 경제주체인 시민은 노예가 되고” “남들은 21세기 세계 시민사회를 외쳐대는 판에 여전히 왕조사관에 꽁꽁 묶인 우리 꼴이 가엾다.” (190p) 하여 “ 그 쿠데타의 추억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박혀 있고, 그 추억을 먹고 사는 자들에게 우리가 사로잡혀 있다.”



    공화당에서 민정당으로 다시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간판만 바꾼 집권당, 중앙정보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로 다시 국가정보원으로 이름만 바꾼 스파이 조직,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다시 노태우에서 박근혜로 문패만 바꾼 청와대. 보라, 박정희 영구집권을 노려 유신헌법 제정에 손댔던 김기춘이 대통령 박근혜 비서실장으로 다시 살아나지 않았나?

    바로 이게 무장철학 신봉자들인 육군대장 출신 남재준이 국정원장으로, 육군대장 출신 김관진이 국방장관으로, 육군대장 출신 김장수가 국가안보실장으로 박근혜 정부 들어 한꺼번에 재취업할 수 있었던 뒷심이다. _191p



    저자는 그 답을 시민에서 찾는다. “한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쿠데타의 추억을 낱낱이 지워야 한다. 시민사회의 몫이다.”(191p)





    4장. 헤드라인에는 없는 미국을 본다



    우리는 연설할 때는 더욱 멋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부러워했고 선진의 온갖 기준을 미국과 견준다. 한국의 국제면은 워싱턴, 월스트리트, 뉴욕 문화는 물론 가십까지 미국 기사가 중심이다. 여기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뉴스가 빠져 있다. 4장은 미국과 전쟁, 미국의 전쟁을 다룬다.



    -경제 60~70%가 군산복합체와 연동된 탓에 전쟁 없인 굴러갈 수 없는 미국(아주 특별한 전쟁전문국가)

    -동맹국 수가 지구 전체 국가의 3분의 1을 웃도는 지구군 군사동맹체가 저질러온 불법전쟁들(나토, 전범조직)

    -필요하면 미국 국무부가 만들어 쓰고 제거했던 ‘테러리스트’의 실체(IS, 탈레반, 알카에다… 한때 자유투사였다)

    -전쟁을 숨기고, 전쟁을 책임지지 않고, 전쟁을 일상화하겠다는 정치로부터 태어난 괴물(드론, 최첨단 무기라고?)

    -최소한 거짓말에 사기까지 덧붙여 불법전쟁을 저질렀다는 점은 같다(오바마든 부시든)

    -미국과 중국의 전쟁은 1949년부터 버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G2의 소리 없는 전쟁)

    -난민발생은 전지구적이고 국제난민 86%를 개발도상국들이 수용해왔다(난민, 나와 당신의 미래다)



    아주 특별한 전쟁전문국가

    “몇몇 본보기만으로도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전쟁으로 500만 웃도는 희생자를 냈”고(198p), “인류사에서 최대 희생자를 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전선을 빼고도 미국이 개입한 전쟁의 희생자는 이렇게 어림잡아도 2,000만 명에 이른다.”(201p)

    “21세기에도 미국의 전쟁은 끝이 없”고(200p) “2010년부터 벌어진 이른바 ‘아랍의 봄’에 개입한 미국은 결국 리비아와 이집트를 내전으로 내몰았고 시리아를 국제전쟁터로 만들어버렸다, 미국이 기획하고 미국이 개입한 이 전쟁들은 이제 최악의 살육전으로 치닫고 있다.”(201p)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상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전쟁에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는데 “경제 60-70%가 군산복합체와 연동된 탓에 군사비 지출을 계속 늘리지 않으면 성장이 불가능한 이른바 군사케인즈주의에 빠져 전쟁 없인 굴러갈 수 없는 체제가 되고 만 꼴이다.”(202p)

    이게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그 미국 전쟁의 제물이 바로 세계시민사회다. 그 희생자가 바로 세계시민이다. 그 희생자는 전쟁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못하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미국 살림살이를 위해 오늘도 이 세상 어디에선가 반드시 전쟁판이 벌어져야 하는 참혹한 시대를 살고 있다.”(203p)



    IS, 탈레반, 알카에다… 한때 자유투사였다

    “우리는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대테러리즘과 전략으로 IS를 무찌르고 전멸시킬 것이다.”

    “2014년 9월 10일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방송연설”하고 “13일 뒤인 9월 23일 새벽, 미군은 시리아를 공습했다."

    미국에게 찍히면 박살나는 이렇게 테러리스트의 정체는 무엇일까?

    학술적 사전적 의미와 달리 현실 속에서 저자는 테러리즘이란 용어가 “‘미국의 이익에 반하거나 미국을 해코지하는 조직의 행위’쯤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몸에 익혔”다. “국제사회에서 테러리스트를 심판관도 미국뿐이었다.



    국제사회에서는 테러리스트 심판관도 미국이다. 미국 정부가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으면 민주화 운동단체든 인권단체든 독립투쟁 조직이든 그날로 바로 테러리스트가 되고 마는 세상이다. 미국이 만든 테러리스트엔 악마도 천사도 없다. 오직 미국의 이익만 있을 뿐이다. 216p



    “미국 정부가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으면 그게 민주화 운동단체든 인권단체든 독립투쟁 조직이든 그날로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린다. 평화와 화해의 상징 만델라와 아프리카민족회의가 2008년까지 미국 국무부 공식 테러리스트였던 것처럼.

    저자는 탈리반과 알카에다를 통해 미국이 찍은 테러리스트의 정체를 본다.

    “1994년 CIA가 이란 혼란조성용 자금 2,000만 달러를 불법으로 뺴내 설계했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뒷돈을 대고 파키스탄이 병참지원으로 만들어낸 게 탈리반이다. 그 탈리반에 더부살이하며 덩치를 키운 게 바로 빈 라덴이 이끌었던 알카에다다. 탈리반과 알케에다, 이 두 테러리스트가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봉쇄하고 중앙아시아 원유와 가스 수송로를 노려온 미국의 대중앙아시아 정책이 낳은 아이들이었다.” 결국 “미국이 창조한 모든 ‘천사’는 유효기간이 끝나는 순간 결국 테러리스트 낙인찍혀 ‘악마’로 생을 마감하는 공통점을 지녀왔다.”



    드론, 최첨단 무기라고?

    얼마 전부터 “군사전문가란 자들이 정밀타격이니 인명피해 최소화를 내세워 ‘드론신화’를 퍼트리자 언론도 덩달아 최첨단 미래전이니 어쩌니 호들갑들이다.” 저자는 “현대전이든 미래전이든 전쟁은 전쟁일 뿐이며 무기는 늘 사람을 죽이는 연장일 뿐이다. 그 과녁은 언제나 나였고 당신들이었다.”는 전쟁과 무기의 본질을 짚는다.(222p)

    저자는 버락 오바마가 늘어놓은 “정밀타격과 민간인 살상 최소화라는 엉터리 신화”를 반박한다. 40년전 명중률 25%에 못 미친다는 B-52 멍텅구리 폭격 하던 시절 “1회 출격당 민간인 살상률이 1,3명 꼴” “40년 뒤, 최첨단 무기라는 드론으로 2004~2013 폭격한 횟수가 800여 회니 1회 총격당 민간인 살상률이 1.25명쯤 된다.” 결과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226p)

    나아가 드론 폭격의 치명적 불법성을 지적한다.



    조지 워커 부시 시절 50회를 밑돌았던 드론 폭격이 관타 나모 형무소 폐쇄를 공약으로 내건 오바마 제1기 4년 동안 400회를 넘겼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미국 정부의 상시전쟁 체제에 지친 국제사회에서는 반미?반전 기운이 크게 높아져왔다. 공공의 눈길과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은폐성을 지닌 무기, 그게 바로 드론이었고, 그게 바로 오바마의 선택이었다. 전쟁을 숨기고, 전쟁을 책임지지 않고, 전쟁을 일상화하겠다는 정치로부터 태어난 괴물이 드론인 셈이다. 288p



    40년 전 캄보디아 시민에게 그랬듯 오늘 밤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민들이 느닷없이 날아들 ‘괴물’을 두려워하며 잠을 설치고 있다. 우리는 그게 내일 바로 당신을 수 있고 나일 수도 있는 날카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세상 모두를 위해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 까닭이다. 228p





    5장. 영웅제작소, 환상을 접어야 보인다



    싱가포르가 일등국가고 노벨상에 세계 최고라는 게 대세다. 아웅산수찌가 “민주화 지도자” “민주주의 아이콘”이라는 대세는 금이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럼 “티벳 불교의 상징” “살아 있는 부처” 달라이라마는? 저자는 진정한 영웅의 탄생은 우상이라는 알을 깨고 나올 때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영웅들을 다시 본다.

    -티벳 사람들의 자유투쟁을 지지해왔던 세계시민사회가 달라이라마의 ‘비폭력평화’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달라이라마는 건드리지 마라!)

    -그동안 군인 독재자를 이롭게 할 수 없다는 뜻에서 참아왔던 아웅산수찌를 향한 비판도 돌려줄 때가 되었다(아웅산수찌, 민주면류관을 패대기치다)

    -소득불평등을 매기는 지니계수 123위, 언론자유 153위도 싱가포르다(우리가 몰랐던 싱가포르)

    -“이명박”이라는 이름을 또박또박 부르는 외신기자를 본 적이 없다(이명박이 누구지?)

    -미국과 유럽 수상자 90%, 여성 수상자 4%(히틀러, 무솔리니, 사사카와도 노벨평화상 후보였다)



    달라이라마는 건드리지 마라!

    비폭력 평화의 상징, 1989년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달라이라마는 티벳을 넘어 국제사회를 향해 비폭력 평화를 외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정작 달라이라마의 비폭력 평화”는 세계 시민사회에 적잖은 이질감을 던졌다.” 살펴보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달포쯤 뒤인 2001년 10월 24일 유럽의회 기자회견에서 탈이 났다. “놀랍고 감탄스럽다. (…) 미국이 아주 신중하게 공격목표물을 골라 시민희생을 최대한 경계하는 것 같다. 이건 보다 니은 문명화의 신호다. AFP는 “달라이라마,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폭격방법 찬양“이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266p)

    “선진국이 핵무기를 가진 것처럼 인디아도 같은 권리가 있다. 몇 나라만 핵무기를 가지고 나머지 나라는 가질 수 없다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1998년 5월 석가탄신일에 제2차 핵무기 실험을 했던 인디아 정부한테 달라이라마는 그렇게 세례를 베풀었다.”(267p)는 걸 우리는 모두 안다. “반전과 반핵은 어떤 조건도 필요하지 않다.”

    “티벳 사람들의 자유투쟁을 지지해왔던 세계 시민사회가” “티벳의 무장투쟁은 정당한데 무슬림의 무장투쟁은 비폭력 평화라는 틀 속에 가”두는 달라이라마의 비폭력 평화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이다.(270p)

    “절대권력은 그게 누구든, 언제든, 어디서든, 감시받아야 건강할 수 있다. 성직자도 예외일 수 없다.”(270p)



    중앙티벳행정부를 이끌었던 지도자는 바로 달라이라마다. 달라이라마 명령 없이 보안국이 인디아-파키스탄 전쟁 참전이라는 중대사안을 결정했으리라 믿는 이는 없다. 그러나 달라이라마는 아무 말도 없었다. (…) 희생자를 보듬지 않는 평화, 전쟁을 문명으로 감탄하는 평화, 핵무기를 마다하지 않는 평화 따위를 세계시민사회는 비폭력 평화라고 부른 적이 없다. _269p



    아웅산수찌, 민주면류관을 패대기치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 “민주화 지도자”, “민주주의 주창자”, “민주주의 아이콘” (272p)

    언론인도 비평가도 입을 닫은 그이 이름 앞에 국제언론이 덧붙인 꾸밈말이다.

    가택연금이 풀리고 정치판에 나오면서 “민주화 영웅 아웅산수찌” 신화에 깨지기 시작한다.

    “내 결정이 싫은 사람은 당을 떠나면 된다. 그것도 민주주의다.”(277p)

    “뭐가 잘못인가? 무슨 돈이든 좋은 데 쓰면 되지.”(279p)

    “내가 (정부를 향해) 뭘 강하게 비난해야 하나?”(280p)

    2012년 8월 버마 북서부 럿빠다웅 경찰에 무력진압 당한 주민들은 ‘아웅산수찌 출입금지’란 펼침막을 내걸었다.(282p)

    “내가 군인을 아주 좋아하는 건 늘 아버지의 군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BBC 방송에 나온 말이다. “그러나 1962년부터 세계 최장기 군사독재 아래 신음해온 시민 앞에 할 말은 아니었다.”(284p)

    아웅산수찌는 시민이 씌워준 빛나는 민주면류관을 왜 스스로 패대기쳤을까? 2013년 6월 6일 그이가 세계경제포럼에서 털어놓은 말에 답이 있다. “대통령이 되기 싫은 척한다면 거짓이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싶다.”(283p) 아웅산수찌는 민족민주동맹이 불법재벌한테 돈을 받은 사건에서도, 정부군의 소수민족 까친 공격에서도, 불교도의 무슬림 로힝자 공격에서도, 럿빠다웅 구리광산개발 반대투쟁에서도 침묵을 통해 다수표를 계산해왔다는 뜻이다.(283p)

    “이쯤에서 국제사회도 언론도 아웅산수찌한테 붙여왔던 온갖 현란한 말치레를 접을 때가 됐다. 그동안 군인 독재자를 이롭게 할 수 없다는 뜻에서 참아왔던 아웅산수찌를 향한 비판도 돌려줄 때가 되었다. 그게 민주화를 외치며 싸워온 버마 시민한테 바치는 예의다. 버마는 아웅산수찌의 것이 아니다. 버마 주인은 시민이다.”(285p)



    아웅산수찌의 일그러진 인식은 이른바 로힝자 인종?종교 분쟁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2012년 6월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댄 아라깐 주에서 불교광신도들이 소수 무슬림 로힝자를 공격해 200여 명을 살해했다. 그 과정에서 10만여 로힝자가 삶터를 잃고 난민이 되었다. 곧장 계엄령을 선포한 버마 정부는 “뱅갈리(방글라데시) 불법이주민들이 일으킨 폭동이다”며 오히려 로힝자한테 책임을 돌린 채 가해자인 불교도를 보호하는 차별진압으로 사태를 키웠다.

    그러자 국제사회와 언론은 버마 군부를 그 폭동 배후로 의심하며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그렇게 온 세상이 난리쳤지만 아웅산수찌는 여기 서도 굳게 입을 닫았다. _281~282p



    히틀러, 무솔리니, 사사카와도 노벨평화상 후보였다

    해마다 10월 초면 언론사들은 저마다 노벨상 예상판을 미리 짜둘 정도로 수상자에 관심을 가진다. 노벨상이 우리에게 과연 얼마나 중요한 뉴스일까.

    1901년 등장한 노벨상은 2012년까지 모두 862명(단체 24개 포함) 수상자를 냈는데, 그중 330명이 미국인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를 보태면 660여 명이고, 다른 유럽인 수상자들을 포함하면 총 수상자의 90%이다.(303p) “평화상 수상자를 훑어보면 오히려 국제전범으로 잡아들여야 할 인물들이 수두룩했다.” 미국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1979년 수상),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2002년 수상), 메나헴 베긴(1979년 수상자) 등 하나같이 불법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의 대원칙은 딱 하나, ‘미국한테 도움이 되거나 이문을 안겨주거나’”(305p)

    한편, 노벨상 수상자 862명 중 여성 수상자는 5%인 44명뿐이고 크리스천이 아닌 이가 수상한 경우는 정말 손 꼽는다. 노벨상이 서구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기독교중심주의로 똘똘 뭉친 아주 전근대적인 상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대한민국처럼 정부와 언론까지 나서서 노벨상 수상프로젝트를 떠들어대는 게 제정신일까? 노벨상을 받겠다고 미쳐 날뛰었던 게 아돌프 히틀러였고 베니토 무솔리니였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켜 숱한 시민을 살해한 조지 워커 부시였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네 번이나 후보에 올랐다. 그런 자들이 열망했던 게 노벨상이다. _2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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