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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붉은 선

붉은 선
  • 저자홍승희
  • 출판사글항아리
  • 출판년2017-10-24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2-01)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PC는 추후 지원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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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도 나서서 말하지 못했던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하여

    여자라면 한번쯤 경험하고 의문을 품었을 내 몸의 이야기



    “내 경험을 있는 그대로 쓰는 지금 이 행위가 곧 투쟁이라는 걸 안다”



    삐뚤빼뚤하고 울퉁불퉁하고 흐물흐물한 것들을 사랑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홍승희는 바닷가 근처에 살면서 글 쓰고 그림 그리고 퍼포먼스를 하는 젊은 예술가다. 한겨레에 오피니언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오마이뉴스에 여자교도소 르포를 썼다. 작업실을 겸하는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강아지 커리와 바닷가에 나가서 뛰어놀고, 가끔은 거리로 나가 예술행동을 한다. 일대일 독점연애에서 벗어나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꿈꾸는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비혼주의자인 그녀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비혼예술퀴어공동체’를 이루어 산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첫 책을 펴냈다.

    『붉은 선: 나의 섹슈얼리티 기록』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한 여자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다. 임신중절 경험에 대한 증언을 시작으로, 데이트 폭력, 데이트 강간, 첫 경험, 첫 자위, 첫 오르가슴, 성폭력, 성추행, 성노동, 폴리아모리, 비혼, 비출산 등 사적인 것으로 탈락되어온 이야기를 쓰고 또 썼다.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보이는 경험이 발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각 개인이 갖고 있는 ‘붉은 선’을 인식하게 해주고, 이를 넘어설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붉은 선’은 사회가, 그리고 우리 자신이 만들어놓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금기·억압·낙인이자 임신테스트기의 붉은 선 두 줄이다. 임신중절수술 후 잠수를 타버린 애인, 그녀의 과거를 까발리겠다고 협박하는 전 애인들…… 그녀는 그녀를 억압하는 붉은 선 앞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그동안 참아왔던 ‘몸’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여성인 저자가 임신중절수술부터 성노동 경험까지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것은 붉은 선을 넘는 일이었다.

    그녀의 글은 투쟁적이고 뾰족하다. 다른 한편 거기서는 차분하고 내재된 슬픔이 묻어난다. 이는 스스로를 독방에 가둬야 했던, 그 어두웠던 창고에서 나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이 그녀와 같은 일을 겪고 있을 10대들에게는 네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는 언니와 같은,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에게는 계속해서 같이 나아갈 힘을 주는, 모든 ‘엄마들’에게는 여성으로서 지나온 섹슈얼리티를 돌아보게 하고 ‘막’ 살기를 응원하는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한다.





    그들의 포르노그래피에 너를 가두지 마



    그녀라고 해서 독방을 부수고 나오는 일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고 해도 여자가 자신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A부터 Z까지 말하기에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성은 늘 숨겨야 하는 것, 드러내서는 안 되고 닳아 없어지는 보물로 취급되어왔다. 성교육 시간에는 “안 돼요!”만을 가르치고, 즐겁고 안전하게 섹스를 즐기는 방법이나 오르가슴을 느끼는 법, 올바른 피임법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남자들의 자위 이야기만 무성한 사회에서 여자의 욕망은 배제된다.

    여성의 몸은 ‘보물’이라고 순결주의를 주입하는 학교와 집에서 그녀는 순결한 섹스를 상상하며 자랐다. 그러나 열다섯 살 때 겪은 데이트강간과도 같은 첫 경험과 ‘삽입 오르가슴’이 중심이 되는 섹스를 경험하면서 그녀는 여성의 몸은 닳아버리는 보물이 아니라 욕망하고, 실수하고, 성장하는 ‘인간’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 한 자위에서 오르가슴을 알게 된 그녀는 클리토리스 오르가슴의 세상을 꿈꾼다. 남성이 중심이 되어 ‘정복하고, 이기고, 지배하고 굴복시켜서 느끼는’ 권력의 쾌락이 아니라 ‘마주치고, 문지르고, 쓰다듬고, 연결되는 고요하고 뜨거운 쾌락의 세상’, 저자는 이를 ‘클리토리스 감수성’이라고 이름 붙인다. 만약 열다섯의 저자가 페미니즘을 만났다면 조금 덜 힘들었을지 모른다. 첫 키스, 첫 경험, 순결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알았다면.





    남자/여자의 역할극, 활용되는 여성성



    ‘여성’이라는 섹슈얼리티는 어디에서든 제멋대로 작동했다. 처음 홍승희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건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한 대한민국 효녀연합 퍼포먼스 때문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대담한 일을 하는 ‘여자’를 눈여겨봤고, ‘예쁜’ 여자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나서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효녀연합을 지켜준다는 오빠연합까지 생기는 등 사람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온라인상에서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이가 많아졌다. 그러나 피켓 시위를 하거나 퍼포먼스를 할 때, 늘 작업 내용이 아니라 ‘정치에 관심 있는 여성’이라는 의외성만이 부각됐다. 여성성은 끝도 없이 활용되고 이용되었다.

    다른 한편 혁명가일 때의 그녀는 여자의 옷을 벗어야만 했다. 촛불 집회에 하이힐을 신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오자 “너는 집회에 데이트하러 왔니?”라는 말을 들었고, 함께 혁명을 외치는 자리에서 짧은 바지를 입거나 화장을 하면 운동의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그녀는 몰래 숨어서 화장을 하고, 그들의 기준에 맞춰 몸에 맞지 않는 갑옷을 입어야 했다. 혁명에서조차 여성의 역할을 정해져 있었다. 때로는 여자, 때로는 어머니, 그리고 명예남자의 갑옷. 같은 동지로 만난 남자와의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성을 경멸하는 만큼 어머니 혁명가를 추앙했고, 섹스를 경멸하면서도 엄숙한 것으로 신비화했다. 그 앞에서 공적인 혁명과 사적인 섹스는 구분되어야 했고, 욕망은 거세되어야 했다.





    여성의 몫으로 남겨지는 이야기들: 피임, 강간, 임신중절, 성노동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군데군데 믿고 싶지 않은 순간들과 만난다. 섹스는 함께 하지만 온전히 여자의 몫이 되어버리는 피임, 존경해오던 선배, 교수, 작가에게 당한 강간,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한 임신중절수술…… 그 어느 것도 그녀가 자발적으로 원한 게 아니었는데, 뒤에 남은 책임과 수치심은 오로지 여자의 몫이었다.

    강간하는 사람들은 절대 강압적이지 않다. 네 몸이 예뻐서, 네가 섹시해서라며 남자를 유혹한 여자에게 화살을 돌린다. 권력을 가진 그들에게 그 일은 사소한 섹스 에피소드로 남는다. ‘그들은 그래도 되니까 그렇게 한다.’ 그녀는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요구와 강압에도 그와의 관계를 망칠까봐 두려워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느꼈다. 그것이 성폭행이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녀를 포함해서 점점 많은 여성이 용기 내어 성폭력 경험을 증언하고 자신의 언어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금, 이 과정 자체가 매우 중요한 투쟁이다.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며 함께 살던 애인과의 사이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했고, 그녀는 작년 임신중절수술을 했다. 고통을 분담하겠다던 그는 수술 후 잠수를 타버렸고, 페미니스트였던 그의 어머니는 이 일을 그녀가 공개하지 못하도록 성노동을 아웃팅하겠다며 협박해왔다. 임신중절, 성노동, 섹스라는 여자에게 불리한 낙인 앞에서 그녀는 절망했다. 그러나 다시 아픈 몸을 추스르고 그동안 꾸역꾸역 참아왔던 ‘몸’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임신중절 경험을 증언하는 것을 시작으로 몸이 겪은, 몸이 기억하는 일들을 쓰고 또 썼다. 거기에는 성노동 경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선뜻 받아주는 곳은 드물었다.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언론과 소위 진보적이라는 언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노동 자체가 여성 인권을 후퇴시키는 것이며, 굳이 커밍아웃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이유였다. 지금까지 낙태나 데이트폭력 등 여러 ‘불법’에 대해서 글을 써왔지만 이런 제지를 받기는 처음이었다. 성노동자에게 유독 뿌리 깊은 혐오와 낙인이 부당하고 비합리적이라 느낀 그녀는 그녀 스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쓴다. 수많은 성노동자에게 가닿기 위해서 묵묵히 써내려간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양보하지 않는다



    더러운 년. 창녀. 걸레. 열다섯 첫 경험 이후, 아니 그 이전부터 ‘더러운 존재’라는 낙인은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침묵은 내 생존 수단이었다. 그런데 내가 입을 떼자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다. 나를 가둔 눅눅한 독방에 빛이 들어왔다. 단지 나는 내가 있던 방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인데. 나를 협박한 그들이 인권과 민주주의 따위를 말하는 인간이라는 게 화나고 답답해서라도, 낙인찍히고 금기된 내 몸을 더 뻔뻔하게 드러내기로 했다. 그래, 나 더럽다. 어쩔래.(6쪽)

    저자는 이렇게 외친다. 그래, 나 더럽다. 어쩔래! 그녀의 작지만 강단 있는 목소리가 오늘날 중요한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각자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붉은 선’을 인식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것이다. 동시에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꼭 필요한 목소리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의 특별한 경험을 ‘여자’들의 문제라고 극단적으로 일반화해버리는 것 아니냐, 너무 충격적이다, 여자가 처신을 똑바로 못 한 거 아니야?”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쓴 홍승은의 말처럼, 그런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은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써나갈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수치스럽지 않지만, 열다섯에 그녀가 겪었듯 지금 누군가는 같은 일을 겪고 똑같이 수치심에 떨고 있을 테니까. 또 다른 ‘나’들에게, 그녀들에게 가닿기 위해, 네 몸을 섹스할 때마다 닳아버리는 보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주체로서의 ‘비체’라는 걸 이야기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또한 애도되지 못하고 소리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그녀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녀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치와 공포에 떨었을 그녀들의 이야기를 발화하고 연대하는 것이 그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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