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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조선사 아는 척하기

조선사 아는 척하기
  • 저자정구선
  • 출판사팬덤북스
  • 출판년2018-11-14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2-25)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PC는 추후 지원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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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판 ‘세상에 이런 일이!’

    조선을 뒤집은 황당무계하지만 흥미롭고 놀라운 사건들!



    * 태조 이성계는 조선판 창씨개명을 실시했다?

    * 무악재가 조선의 수도가 될 뻔했다?

    * 안타까운 조선판 세월호 참사!

    * 한양에도 운하가 건설될 뻔했다?

    * 조선 시대에도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 노비에게도 최저 임금과 육아 휴직이 주어졌다?

    * 지금의 삼심제는 조선 시대 판결제도에서 유래했다?

    * 조선에도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조선 시대라 하면 고루하고 답답한 시대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아주 흥미로운 시기였다. 《조선왕조실록》을 찬찬히 읽다 보면 조선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야말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야사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놀랄 정도의 역사가 가득하다.

    《조선사 아는 척하기》는 실록 속에 숨어 있는 흥미진진하고 황당한, 때로는 놀라운 역사를 정리하여 담아낸 이야기보따리다. 책에 실린 이야기를 통해 조선의 생생한 역사 속으로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그동안 감추어진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아가 조선 시대, 조선 사람들특히 당시 일화들에는 현재와 비슷한 내용이 많으므로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여 타산지석으로 삼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제대로 몰랐던 조선 시대의 민낯들을 재미난 일화를 통해서 들려주면서, 복잡하고 따분하게 읽히는 조선왕조실록이 독자에게 편하게 아는 척할 수 있는 역사책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조선왕조실록》에 대하여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책의 기본 배경은 조선 건국 직후인 태조 때부터 3대 태종 때까지이다. 해당 시기의 국왕과 왕실, 관료, 백성, 명나라 사신과 관련된 역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후대 왕의 연간에서 관련 일화를 첨부하기도 했다. 아울러, 각 에피소드마다 재미나고 기발한 만화를 실어서 독자들이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편집했으며, 부록에는 조선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선 왕조 세계도와 조선사 연표를 담았다.





    조선 왕실을 알면 조선이 보인다!



    *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족을 몰살하고, 고려 왕씨 성을 개명하게 했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공신들은 고려 왕실의 후예인 왕씨들이 살아 있는 한 편히 발을 뻗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모반을 도모했다는 허무맹랑한 구실을 꾸며 왕씨들을 일망타진하였을 뿐만 아니라, 왕씨 성을 일절 쓰지 못하도록 어명을 내렸다. 왕씨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거나 고려 왕조에서 왕씨 성을 하사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원래의 성을 따르게 했다. 고려 왕씨에 대한 철저한 통제와 몰살을 추진했던 것이다.

    * 태조는 무악재 아래 신촌을 조선의 수도로 생각했다?

    조선은 태조 3년 9월에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지만, 그 이전에는 계룡산 부근에 수도를 정하려다가 취소하였다. 다시 서울의 무악재 아래 신촌 일대로 옮기려다가 포기한 적도 있다. 한양에 수도를 정한 조선은 ‘왕자의 난’ 이후 개성으로 잠시 옮겼다가 태종 때 한양으로 재천도하였다. 한양으로 재천도하는 결정은 종묘에서 동전으로 점을 쳐서 정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신하들의 갑론을박은 소모적인 정책논쟁을 불러왔다.



    * 조선 시대 임금은 부의금으로 얼마를 냈을까?

    조선 시대에는 재상 등의 고위직을 역임한 신하들이 사망하면 임금이 부의금을 하사하고,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 주며, 시호를 내렸다. 부의로 1품은 쌀과 콩을 아울러 60?100석, 정2품은 40?50석, 종2품은 30석 이하를 주었다. 1석을 2가마로 치고, 1가마를 80kg으로 환산하면 100석은 약 200가마로 16,000㎏이다. 당시 재상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부의금을 하사받았던 것이다. 임금님의 지나친 부의금 때문에 나라 곳간이 거덜 날 정도였다.



    * 조선 시대 사관은 임금을 몰래 미행까지 했다?

    사초는 사관이 임금이나 신하들의 언행을 날마다 기록한 것으로, 실록 편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 자료였다. 사관들이 안심하고 직필하도록 실록을 편찬하기 전까지는 임금을 비롯한 그 누구도 사초를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태조와 태종은 굳이 사초를 열람하려다가 신하들과 충돌을 빚었다. 기록에 대한 두려움은 조선 왕들도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조선 관리와 제도를 알면 조선이 보인다



    * 조선시대에도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조선 시대에도 요즈음의 인사청문회와 비슷한 서경署經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관리 후보자들의 신분, 조상, 과거 합격 여부 등을 조사하여 관리로서의 적합도를 검증하는 제도로, 서경을 통과하지 못하면 관리가 되지 못했다. 이 서경은 임금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엄격하였다. 지금의 인사청문회는 어떨까?



    * 출근하지 않으면 관리도 매를 맞았다

    조선 초기에는 관청에 출근하지 않고 결근하거나 조퇴하는 관리들이 많았다. 조정에서는 이들에게 매를 쳐서 징계하였다. 결근한 자에게는 태형 10대, 무단 조퇴를 하는 자에게는 태형 50대를 부과할 정도로, 결근보다 무단 조퇴로 불성실한 자를 더 엄하게 벌했다.



    * 야간 통행금지를 어겼다고 대사헌도 파직되었다?

    조선 건국 직후에는 저녁 8시경부터 새벽 4시경까지 4대문을 통과하거나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야간 통행 금지령을 실시했는데, 영을 어겼다가 파직된 대사헌도 있었다. 대사헌은 지금으로 치면 감사원장에 해당하는 벼슬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직자의 기강을 바로잡으려 했던 조선 시대가 지금보다 더 나은지도 모를 일이다.



    * 조선 팔도에 황색 옷을 금하라!

    예나 지금이나 옷은 부와 계급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조선 초기에는 황제의 색깔이라고 하여 황색과 황색 옷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그 외에 흰색과 옥색, 회색의 옷도 입지 못하게 했다. 황색으로 보자기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다가 귀양을 간 사람이 있었다. 황색옷 입기를 금하였나, 정작 양반부터 천민까지 모두들 황색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고 거리를 마구 활보할 정도로 황색 옷은 대유행이었다.



    * 지금의 삼심제가 조선 시대 판결제도에서 유래한다?

    조선 시대에도 인명 보호 차원에서 오늘날의 삼심제와 유사한 삼복법三覆法을 시행하였다. 지방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발생하면 수령이 먼저 심리하여 관찰사에게 보고하고, 관찰사는 다시 심리하여 중앙의 의정부에 보고하며, 의정부에서는 세 번 심리하여 임금에게 세 번 아뢴 다음에 사형을 결정하도록 했다. 조선 시대는 법치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조선 백성을 알면 조선이 보인다!



    * 안타까운 조선판 세월호 참사

    조선 시대에는 경상도나 전라도, 충청도 지방에서 조세로 거두어들인 곡식이나 베 등을 주로 배를 이용하여 한양까지 운반하였다. 이를 조운이라 하였고, 그 배를 조운선이라 불렀다. 조운선이 풍랑을 만나 난파하거나 침몰하여 곡식과 사람을 잃는 사고가 매년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태종 3년에는 조운선 34척이 한꺼번에 바다에서 침몰하여 천여 명의 수군이 몰사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조운선의 침몰은 인명은 물론 국가 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는 재난이었다.



    * 노비에게도 최저 임금을 허하라?

    조선 시대에는 사노비들이 비참한 대접을 받은 반면, 공노비들은 봉급을 받고 휴가를 가기도 했다. 관청에서 일하는 여자 노비에게는 출산 휴가도 주었으며, 산기가 임박하여 복무하다가 미처 집에 가기 전에 아이를 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출산 1개월 전부터 공노비의 복무를 면제토록 했다. 세종 때에는 공로에 따라 신분 상승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 조선은 무당에게도 세금을 거두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다. 조선 시대에는 무당에게도 세금을 거두었다. 국가에서 3년마다 한 번씩 무당의 명부를 작성하여 무세巫稅를 징수했다. 무세는 원래 매년 두 번 징수하였는데, 세종 5년부터는 매년 한 차례만 거두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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